人生知己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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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의 '자유민주주의' 실체

2019년 3월 17일.

올해는 3. 1 운동이 일어나고 100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있는 시점이다.

또한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100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친일파들로 인하여 우리 민족이 하루아침에 나라를 빼앗기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고문을 당해 죽어 갔으며, 또한 얼마나 많은 날들을 한에 맺혀 살아야 했을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친일파들이 여전히 국회와 사법부를 장악하고, 언론을 동원하여 백성들에게 거짓 역사를 주입하는 작금의 현실 앞에 우리 후손들은 선조들의 고통을 감히 이해 하노라 어찌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친일파들로 인하여 나라를 빼앗기고 평생을 고향을 떠나 만주에서, 상해에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쏟아부으며 나라를 되찾을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내야 했던 그 세월의 깊이를 이해 하노라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분들이 그리 오랜 세월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힘을 써서 독립을 쟁취하였다면 후손들은 마땅히 그렇게 되찾은 나라를 반석 위에 바로 세우고 다시는 친일파들이 일본에 비굴하게 굽신거리고 매국행위를 하는 짓 따위를 못하게 해야 마땅한 일이다.

또한 국민이 주인인 국회에서 친일파들이 뻔뻔스럽게 역사를 왜곡하고, 국민을 욕보이는 짓거리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그러하지 아니한 작금의 현실에 청년들에게 사과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1948년 10월 28일 작성된 "한국 생존의 전망"이라는 미국 CIA 비밀문서에"이승만의 인격"이라는 파일이 존재한다.

이 파일은 다음과 같이 이승만을 기록하고 있다.

이승만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이 목적을 추구하며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출처 : (백년전쟁)https://www.youtube.com/watch?v=idbhQx10-9A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지금의 친일파들의 뿌리나 다름없는 이승만 독재정권이 추구했던 정치이념,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반대어는 전제주의(군주제에서의 독재) 또는 전체주의(공화제에서의 독재)"

"공산주의의 반대어는 자본주의"

 

얼핏 보면 '공산주의' 반대어가 보수가 흔히 떠드는 '자유주의' 일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미국의 당시 보수주의 (엄밀히 말하면 경제적 개인주의가 결합된 자유보수주의)를 갖다가 이승만 정권은 당시 국내 정치적 상황에 맞추어 이를 '자유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로 둔갑시켰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승만이 당시 이용한 '자유'라는 것은 프랑스나 영국과 같은 유럽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개인의 자유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단지 미국의 보수주의를 분단상태의 한반도 상황에 맞춰 자유주의라고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이승만의 '자유'는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이 민족의 자유를 부르짖을 때 사용하던 즉, 개화기 이후부터 국내 들어온 것으로 알려진 '자유주의'라는 의미와도 전혀 다름을 알아야 한다.

이승만의 자유주의는 공산주의를 피해 내려온 이북 출신들을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 청산의 명분 제거와 독재정권 유지에 이용할 목적으로 만들어낸 '반공 이데올로기'를 위하여 이용되었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보수주의 그리고 자유주의는 이렇게 서로 연결된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자유주의'에 이름뿐인 민주주의를 갖다 붙인 정체불명의 이데올로기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였다.

우리는 이승만 독재의 실체를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보도연맹 학살사건', '3.15 부정선거'와' 4사 5입 개헌 사건' 그리고 제주 4.3항쟁 무력진압과 여.순항쟁 무력진압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의 '자유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는 공산주의를 피해 남한으로 내려왔던 당시 이북 출신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좋은 수단이었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반공 이데올로기'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4.3 제주항쟁에서의 양민학살과 반민특위 해체에 등장하는 '서북청년단'이다.

탈북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등의 위와 유사한 수법들은 선거 등 주요국면에서 모든 보수정권들이 계속해서 활용하게 된다.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 실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해방 이후 미군의 행태를 확실하게 아는 것이 필요하다.

 

2차대전 승전국인 미소 강대국 간의 밀약에 의하여 남한을 점령한 미군은 38선 이북지역을 차지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하여 남한을 아시아의 병참기지로 활용했다.

미국이 1952년에 미일 안전보장 조약을 체결한 이후 일본을 주요 우방으로 인정하였다는 데서도 미국은 상해임시 정부보다 일본을, 그리고 한반도의 친일파들을 더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들의 친일행위 흔적을 없애고, 친일파 청산의 명분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했다.

반공 반소, 친미와 반미, 찬탁과 반탁, 우익과 좌익으로 얼룩진 1945~1950년.

그 시기에 등장한 것이 '자유민주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였다.

해방 이후 독립운동가들은 찬탁과 반탁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것을 사실상 강요당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해방 이후 찬탁과 반탁에 대하여 알기 위하여서는 먼저 다음의 사실을 반드시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1945년 3상 회의의 핵심은 조선의 독립 민주정부 수립이었고, 신탁통치는 어디까지나 독립 민주정부를 수립하도록 돕기 위한 과도 행정부의 성격이었다.

그러나 당시 동아일보의 3상회의 결과에 대한 왜곡보도로 인하여 좌우 이념 대립이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남북이 분단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는 6.25 전쟁이란 동족상잔의 참극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승만과 친일파들이 3상회의 결과에 대하여 당시 취한 선택은?

찬탁? NO 반탁이었다.

그것은 미군정의 뜻대로 소련을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관련내용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6310

 

미 군정이 애초에 노린 것은 조선을 독립국가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으며, 남한에 자신들의 기지를 세워 소련의 남하를 막고, 일본을 방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동아일보의 3상회의 왜곡보도는 미군의 위와 같은 목적에 매우 부합하는 보도였다고 할 수 있다.

동아일보의 3상회의 왜곡보도는 다음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신탁통치안에 깔린 안보구상은 소련의 남진 저지가 1차적이고 일본 통제가 2차적인 목표였다.

 

해방 이전 1944년 경의 미 군부는 초기 점령단계에서 미국이 한반도를 하나의 통일된 단위로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하였고, 전략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분할점령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https://memory.library.kr/files/original/8df2d8aec5a3ae901c9086101a9e52c4.pdf

 

이 당시 친일파들은 재빠르게 반탁 쪽으로 노선을 갈아타게 된다.찬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독립으로 가는 길이었으며, 반탁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즉 친미주의자, 친일파 이승만의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의미했다.

친일파 이승만 정권은 찬탁을 주장하던 독립운동가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탄압했다.

이러한 반공 이데올로기는 해방 이후 이러한 상황은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추구했던 많은 독립투사들이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하는 계기로 작동하였다.

 

그리고 6.25 이후 이승만 정권의 '보도연맹 집단학살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이승만 정권은 6.25 발생 이전에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독립운동가들을 관변단체에 강제로 가입시켰다.6.25가 발생하자 이승만 정권은 당시 관변단체였던 보도연맹에 가입한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으며, 그 수는 3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학살을 당한 사람들 중에는 독립 운동가들도 많았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6.25 이후'반공 이데올로기'는 지난 60년 간 보수가 권력을 잡기 위하여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되었다.'반공 이데올로기'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보수정권들이 부패한 독재정권의 유지와 친일행위 합리화를 위하여 '반공 이데올로기'를 악용하였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방송에 흔히 등장하던 단어가 있다. 바로 '자유대한'이다.'민주대한'이라는 소리는 듣지 못했으나, 대신 '자유대한'이라는 소리를 종종 들으며 실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를 외치는 피켓 시위를 하고, 그 시위를 동조, 옹호하는 정치세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승만 독재정권이 이용했던 '반공 이데올로기'는 이후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모든 보수정권이 주요 선거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했던 이념으로 굳어지게 된다.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 진짜 실체는 무엇인가.국민들에게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자유민주주의'는 선거 등의 주요 국면에서 자신들이 불리해졌을 때는 북조선에 돈을 주고 고의로 북풍을 조작(총풍사건)할 만큼 매우 반민족적이며, 반국가적이었다.199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이 저지른 '총풍사건'은 정권을 잡기 위하여서라면 어떤 짓이든지 벌이고도 남을 집단이 보수집단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국민들에게는 반공, 자유를 외치는 보수정권이 정작 자신들이 권력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자 그들이 주적이라는 북측에 돈을 주고 전쟁위기를 조작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보수가 얼마나 추악한 집단인가를 명백히 입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이 부분은 [원충연 수첩폭로와 연평도 포격사건]에서 추가로 다루고 있다.https://borrowingworld.tistory.com/269
완전한 의회 민주주의를 위한 가장 기초적이며, 필수적인 비례대표제를 없애야 한다는 자유한국당, 공수처 설치에 관한 법률 제정을 거부하는 자유한국당을 반드시 국민의 손으로 탄핵해야 마땅하다.또한 자유한국당과 그 동조세력들의 역사와 민족에 대한 폐륜행위들을 국민들이 단죄하지 않는다면 국민들 스스로 잘못된 역사의 반복을 초래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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